무장투쟁 펼친 항일의사 소몽(素夢) 채기중(蔡基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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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9회 작성일 23-12-1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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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조직 대한광복회 만들어 친일부호 장승원·박용하 처단 -

 

일제강점기 대한광복회 경상도 책임자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생애 및 활동사항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극오(極五). 호는 소몽(素夢). 일명 기중(基仲). 경상북도 상주 출신. 1910년대 국내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인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여 활약하였다.

 

1913년에 유창순(庾昌淳)·유장렬(柳璋烈)·한훈(韓焄) 등과 함께 독립군단체로서 의병출신자의 집합체인 광복단을 결성하고, 군자금을 수합하기 위하여 강순필(姜順弼)과 함께 일본인이 경영하는 영월의 중석광산에 잠입, 활동하였다.재만(在滿) 독립군과도 연락을 취하는 한편 대구에서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를 경영하던 애국지사 박상진(朴尙鎭)과도 연락하면서 1915년 초 대구에서 결성된 조 국권회복단을 협의하고 1915년 7월에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을 총사령으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황해도 각지에 회원들이 결성되어 있었는데, 채기중은 경상도의 책임자였으며 전라도 조직에도 크게 공헌하였다.1917년 11월 광복회가 친일 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할 때 이 공작을 직접 지휘하여 결행하였다. 1918년 광복회가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자 상해로 망명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목포에 잠적하였다가 붙잡혀 사형되었다.

 

‘살아 있으면서 의리가 없다면 그것은 산 것이 아니며 하늘의 뜻에 따라 죽는다면 죽음이 곧 삶이로다.’일제에 맞서 치열한 독립운동을 실천했던 소몽(素夢) 채기중(蔡基中) 선생이 옥중에서 남긴 글귀다. 당시 그가 어떤 의지를 갖고 항일투쟁에 임했는지 쉬이 짐작하게 한다.

 

상주 출신인 그는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래 일관되게 무장투쟁을 실천에 옮겼다. 끊임없이 단원을 확보하고, 군자금 모금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다. 특히 그는 대한광복회 창설을 주도하고 ‘친일부호 처단’이라는 의협투쟁을 벌였다. 비록 그의 육신은 일제에 의해 스러졌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살아있다.

 

40세때 ‘풍기광복단’조직해 항일투쟁

1915년엔 박상진과 함께 광복회 결성

경상도지부 맡아 군자금 모금 등 열성

의병장 허위 밀고한 장승원 등 사살도

동지들과 체포 1921년 형무소서 순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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